|
| 1 | +--- |
| 2 | +title: "내일의 내가 오늘 밤마다 전화를 건다 — 1화. 오른쪽으로 걷지 마" |
| 3 | +description: "밤 11시 17분, 내 번호로 전화가 왔다. 상대는 내일 아침 내가 어디서 다칠지를 알고 있었다." |
| 4 | +pubDate: 2026-09-10T13:40:00.000Z |
| 5 | +category: "Library" |
| 6 | +tags: ["소설", "미스터리", "내일의 내가 오늘 밤마다 전화를 건다"] |
| 7 | +slug: "tomorrow-calls-one" |
| 8 | +draft: false |
| 9 | +--- |
| 10 | + |
| 11 | +내 번호로 걸려 온 전화라서 받았다. |
| 12 | + |
| 13 | +모르는 번호였으면 무시했을 것이다. 그날도 카드사에서 세 번, 인터넷을 바꿔 준다는 곳에서 두 번 전화가 왔다. 내 번호를 누군가 잘못 건드린 줄 알았다. |
| 14 | + |
| 15 | +밤 11시 17분이었다. 나는 싱크대 앞에서 냉동만두 봉지 뒷면을 읽고 있었다.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맛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, 프라이팬을 씻는 일이 더 싫었다. |
| 16 | + |
| 17 | +“여보세요.” |
| 18 | + |
| 19 | +상대는 한동안 숨만 쉬었다. 코가 막힌 사람처럼 입으로 짧게 들이마셨다. |
| 20 | + |
| 21 | +“만두 내려놔.” |
| 22 | + |
| 23 | +나는 베란다 쪽을 봤다. 맞은편 건물은 창문마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. 주방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건 내 쪽이었다. |
| 24 | + |
| 25 | +“누구세요.” |
| 26 | + |
| 27 | +“전자레인지에 돌려. 어차피 프라이팬 안 씻을 거잖아.” |
| 28 | + |
| 29 | +장난을 칠 만한 사람은 동생 수연밖에 없었다. 그런데 남자 목소리였다. 어디선가 들어 봤지만 처음에는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. 내 목소리는 내가 듣는 것보다 훨씬 납작했다. 예전에 면접 연습을 녹음했다가 바로 지웠던 기억이 났다. |
| 30 | + |
| 31 | +나는 만두를 내려놓았다. |
| 32 | + |
| 33 | +“너 누구야.” |
| 34 | + |
| 35 | +“내일의 너.” |
| 36 | + |
| 37 | +웃음이 나왔다. 상대는 웃지 않았다. |
| 38 | + |
| 39 | +“초등학교 4학년 때 수연이가 베란다에 갇혔어. 네가 문 잠갔지. 엄마한테는 저절로 잠겼다고 했고.” |
| 40 | + |
| 41 | +나는 식탁 의자를 당겨 앉았다. |
| 42 | + |
| 43 | +“그걸 어떻게 알아.” |
| 44 | + |
| 45 | +“수연이가 유리를 두 번 두드리고, 쉬었다가 한 번 더 두드렸어. 울면 네가 더 안 열어 줄까 봐 울지도 못했어.” |
| 46 | + |
| 47 | +의자 다리 끄는 소리가 상대편에서도 났다. 내가 낸 소리보다 반 박자 늦었다. 통화가 울리는 모양이었다. |
| 48 | + |
| 49 | +“걔한테 들었어?” |
| 50 | + |
| 51 | +“수연이는 그날 기억 못 해. 너만 기억하지.” |
| 52 | + |
| 53 | +나는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. 수연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.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던 건 맞았다. |
| 54 | + |
| 55 | +“지금부터 잘 들어. 내일 출근할 때 편의점 앞에서 길 건너지 말고, 처음부터 왼쪽 인도로 가.” |
| 56 | + |
| 57 | +“뭐?” |
| 58 | + |
| 59 | +“8시 42분에 냉장 탑차가 후진해. 편의점 앞 파란 천막 기둥을 치고. 너는 소리 듣고 돌아보다가 오른손을 짚어.” |
| 60 | + |
| 61 | +“…….” |
| 62 | + |
| 63 | +“손목만 부러진 줄 알았는데 엄지손가락 감각이 안 돌아와. 지금도.” |
| 64 | + |
| 65 | +무언가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. 비닐인지 옷인지 알 수 없었다. 나는 내 오른손을 폈다. 만두 봉지를 잡았던 손가락 끝에 성에 녹은 물이 묻어 있었다. |
| 66 | + |
| 67 | +“미래에서 전화할 수 있으면 로또 번호를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니야?” |
| 68 | + |
| 69 | +“오늘 화요일이야. 추첨 안 했어.” |
| 70 | + |
| 71 | +내 방 달력은 월요일이었다. |
| 72 | + |
| 73 | +“내일 딱 하루만 보여?” |
| 74 | + |
| 75 | +“보이는 게 아니라, 내가 여기 있다고.” |
| 76 | + |
| 77 | +상대가 처음으로 짜증을 냈다. 그 말투는 익숙했다. 내가 고객센터에서 같은 설명을 세 번째 할 때 내는 목소리였다. |
| 78 | + |
| 79 | +통화 화면을 봤다. 숫자가 이상했다. 통화 시간이 늘어나는 대신 줄어들고 있었다. |
| 80 | + |
| 81 | +00:38. |
| 82 | + |
| 83 | +00:37. |
| 84 | + |
| 85 | +“이거 시간이 왜 이래?” |
| 86 | + |
| 87 | +“3분이 다야. 11시 20분 되면 끊겨. 다시 걸어도 그날은 안 돼.” |
| 88 | + |
| 89 | +“통신사에 알아봤어?” |
| 90 | + |
| 91 | +“제발. 왼쪽으로 가겠다고만 해.” |
| 92 | + |
| 93 | +나는 잠깐 생각했다. 손해 볼 일은 없었다. 길 건너편으로 걷는 데 무슨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. |
| 94 | + |
| 95 | +“알았어. 왼쪽으로 갈게.” |
| 96 | + |
| 97 | +상대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. |
| 98 | + |
| 99 | +그 뒤로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. 조금 전까지 들리던 낮은 웅웅거림이 사라졌다. 냉장고나 환풍기 같은 소리였는데, 꺼지고 나서야 있었다는 걸 알았다. |
| 100 | + |
| 101 | +“잠깐.” |
| 102 | + |
| 103 | +상대가 말했다. |
| 104 | + |
| 105 | +“왜 이러지.” |
| 106 | + |
| 107 | +“뭐가.” |
| 108 | + |
| 109 | +“밖에 좀…….” |
| 110 | + |
| 111 | +00:02. |
| 112 | + |
| 113 | +의자가 넘어졌다. |
| 114 | + |
| 115 | +00:01. |
| 116 | + |
| 117 | +“야, 가지 마.” |
| 118 | + |
| 119 | +전화가 끊겼다. |
| 120 | + |
| 121 | +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다. 다시 전화를 걸자 통화 중이라는 안내가 나왔다. 두 번 더 걸어도 같았다. |
| 122 | + |
| 123 | +만두는 결국 먹지 않았다. 냉동실에 돌려놓으면서 봉지 집게를 찾았는데, 오른손으로 서랍을 뒤지는 일이 어쩐지 불편했다. |
| 124 | + |
| 125 | +*** |
| 126 | + |
| 127 | +다음 날,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왔다. |
| 128 | + |
| 129 | +편의점 앞까지 가는 길은 오른쪽 인도가 그늘이었다. 왼쪽은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왔다.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한 번을 더 기다렸다. 고작 그 일 때문에 지각하게 생겼다. |
| 130 | + |
| 131 | +8시 41분. |
| 132 | + |
| 133 | +반대편에서 편의점 직원이 생수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. 파란 천막도, 탑차도 있었다. 그 편의점에는 거의 매일 같은 차가 왔다. 누군가 내 출근길을 알고 있으면 할 수 있는 말이었다. |
| 134 | + |
| 135 | +나는 휴대폰으로 차를 찍었다.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내가 멍청한 짓을 한다는 느낌이 조금 덜했다. |
| 136 | + |
| 137 | +기사가 운전석 문을 닫았다. |
| 138 | + |
| 139 | +짧은 후진 경고음이 두 번 울리고, 철판을 주먹으로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. 차 뒤쪽이 천막 기둥을 밀었다. 기둥은 생각보다 쉽게 꺾였다. 천막 아래 세워 둔 입간판이 넘어지면서 바닥을 긁었다. |
| 140 | + |
| 141 | +내가 늘 지나가는 자리였다. |
| 142 | + |
| 143 | +직원은 생수 상자를 놓친 채 소리를 질렀다. 기사는 차에서 내려 기둥과 범퍼를 번갈아 봤다. 다친 사람은 없었다. |
| 144 | + |
| 145 | +휴대폰 위에 8시 42분이 떠 있었다. |
| 146 | + |
| 147 | +나는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았다가, 반대로 잡았다. |
| 148 | + |
| 149 | +회사에는 배탈이 났다고 했다. |
| 150 | + |
| 151 | +*** |
| 152 | + |
| 153 | +그날 밤에는 11시부터 식탁에 앉아 있었다. |
| 154 | + |
| 155 | +휴대폰 배터리는 100퍼센트였다. 충전선을 뺐다가 다시 꽂았다. 어제의 통화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, 번호를 눌러 보면 언제나 통화 중이었다. |
| 156 | + |
| 157 | +나는 메모장에 물어볼 것을 적었다. |
| 158 | + |
| 159 | +어떻게 거는지. 어디서 알았는지. 어제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. |
| 160 | + |
| 161 | +11시 16분이 되자 메모장을 닫았다. 화면을 다른 것으로 채워 두면 전화를 놓칠 것 같았다. |
| 162 | + |
| 163 | +정각에 울렸다. |
| 164 | + |
| 165 | +“왼쪽으로 갔어.” |
| 166 | + |
| 167 | +나는 여보세요 대신 말했다. |
| 168 | + |
| 169 | +“알아.” |
| 170 | + |
| 171 | +목소리가 달랐다. 같은 내 목소리였지만 코가 막히지 않았다.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. |
| 172 | + |
| 173 | +“다행이다. 손은 어때?” |
| 174 | + |
| 175 | +“무슨 손?” |
| 176 | + |
| 177 | +“오른손. 어제 감각 없다고 했잖아.” |
| 178 | + |
| 179 | +상대가 잠시 조용해졌다. |
| 180 | + |
| 181 | +“아. 그 전화.” |
| 182 | + |
| 183 | +“그 전화라니.” |
| 184 | + |
| 185 | +“나도 받았지. 그래서 왼쪽으로 갔고.” |
| 186 | + |
| 187 | +나는 식탁에 펼쳐 놓은 메모를 봤다. 첫 질문 옆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. |
| 188 | + |
| 189 | +“그럼 어제 나한테 전화한 건 누구야.” |
| 190 | + |
| 191 | +“너.” |
| 192 | + |
| 193 | +“그건 아는데, 걔는 다쳤다며.” |
| 194 | + |
| 195 | +“네가 오늘 안 다쳤잖아.” |
| 196 | + |
| 197 | +상대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말했다. |
| 198 | + |
| 199 | +“그런 내일은 없어진 거지.” |
| 200 | + |
| 201 | +나는 펜을 들었다. 손목이 멀쩡했다. 손가락도, 손가락으로 누른 종이도 아주 선명했다. 이상한 일인 건 분명했지만 결과는 좋았다. 물어볼 일이 많아도 순서를 정하면 될 것 같았다. |
| 202 | + |
| 203 | +“그럼 지금은 수요일이고?” |
| 204 | + |
| 205 | +“응. 내일 회의 때 부장이 일정 물어보면, 금요일이라고 하지 말고 다음 주 화요일이라고 해. 이유는 내가 설명…….” |
| 206 | + |
| 207 | +상대의 말 뒤로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. |
| 208 | + |
| 209 | +처음에는 텔레비전인 줄 알았다. 아주 작았고, 멀리서 들렸다. |
| 210 | + |
| 211 | +“여기.” |
| 212 | + |
| 213 | +내 펜이 멈췄다. |
| 214 | + |
| 215 | +코가 막힌 사람처럼 입으로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. |
| 216 | + |
| 217 | +“나 아직 여기 있어.” |
0 commit comments